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, 라는 말이 있긴 한데요. 우리 집은 거꾸로 갑니다. 소리 질러서 통하는 건, 하나도 안 통하게 했어요. 대신 "이거 좀 별로인데, 조금만 먹으면 안 돼요?" 같은 협상은 얼마든지 들어줘요. 떼쓰지 말고 말로 하라, 그 한 줄이에요. …근데 사실, 이걸 쓰고 있는 제가 그 떼 쓰는 애보다 더 지쳐 있어요.
저녁 7시 14분, 밥그릇을 식탁에 놓자마자 접시가 날아갔습니다.
"내가 생각한 밥이 아니야". 이유는 그것뿐. 막 소리 지르고, 던지고,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태. 저는 이쪽에서 아, 또 왔구나 하는 표정이었을 거예요.
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.
이 말이 있긴 합니다. 울면 결국 더 받아 간다는 뜻이죠.
근데 우리 집은요, 이거 안 됩니다. 하나도 안 됩니다.
이 애가 "소리 지르면 밥이 바뀐다"라는 걸 한 번이라도 배워 버리면, 진짜로 끝장이에요. 길게 봐서요. 그래서 이 선만큼은 안 움직입니다. 한 번도 안 움직입니다.
근데 — 이 부분은 분명히 해 두고 싶은데요 — 협상은 언제든 열어 둡니다. "이거 좀 별로인데, 조금만 먹으면 안 돼요?" "양념 좀 바꿔 주시면 안 돼요?" 다 됩니다. 다 들어 줘요. 떼쓰지 말고, 협상해라. 우리 집 규칙은 그 한 줄이에요.
이미지로는 민원 창구 같은 느낌이에요. 큰 소리 지른 사람을 먼저 통과시켜 주면, 다음부터는 다 큰 소리로 들어옵니다. 그래서 소리 크다고 번호표를 안 당겨 줘요. 근데 창구 자체는 항상 열려 있어요. 번호표 뽑고, 그냥 평범하게 말 걸어 주면, 이쪽은 진지하게 듣습니다.
왜 이렇게 빡빡하냐 하면, 절반은 이론이고 절반은 그냥 고집이에요.
이론 쪽은 행동 연구를 좀 보면 나오는 "간헐 강화 (intermittent reinforcement)"라는 거예요. 가끔씩만 보상이 나오는 행동이 제일 끈질기게 남는다, 라는 얘기¹. 열 번 떼쓰면 한 번이라도 통한다면, 그 한 번을 노리고 평생 떼를 쓰는 설계가 되는 거죠. …이런 걸 식탁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, 아마 앱 만드는 사람의 직업병일 거예요.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행동에 빠지는지를 아는 게 앱 설계에 좀 도움이 돼서, 그 부산물 같은 거지, 육아의 정답이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.
그리고 최근에는 거기에 반항성 도전장애 (ODD)까지 같이 와서, 이론이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게 됐어요. 전에도 어디 썼던 것 같은데, 우리 집 애는 지금 "무슨 말을 들었는지"가 아니라 "누가 말했는지"로 반응합니다. 같은 "밥 먹자" 라도 말한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, 그것만으로 스위치가 켜져요.
그래서 가능하면 말로 안 합니다. 앱한테 시켜요. 제가 입을 안 열어도 돌아가게 만들어요. Todo 앱들을 만든 이유의 절반은 이거예요. 근데 밥은요, 앱이 어떻게 안 됩니다. 접시 위의 음식이 "생각한 거랑 다르다"는 건, 알림으로 막을 수가 없어요.
밤에 애 재우고 나서 ADHD 육아 블로그나 다른 분들 경험담을 읽어요. 읽으면서 맞아, 진짜 그렇지 하고요. 그런데 다 읽고 나서, 마지막에 "힘드시죠"라는 감상이 왜인지 안 나와요. "힘들다"라는 단어를, 이미 넘어 버린 느낌입니다. "지친다"가 좀 더 가까워요.
아 진짜, 지친다.
우리 집에서 앱을 이렇게 여러 개 만들고 있는 건, 결국 "어떻게 해야 이 애한테 꽂히지"라는 시행착오의 잔해예요. 꽂힌 것도 있고, 거들떠도 안 본 것도 있고. 근데 우리 집 애한테 안 꽂힌 거라도, 어디 다른 집 아이한테는 꽂혀 줬으면 좋겠다, 하고 요즘은 생각해요. 헛수고는 아니었다, 라고 하고 싶은 것뿐일지도 모르지만요.
솔직히, 이게 맞는 육아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. "떼쓰는 걸로는 안 통한다" 그 한 줄만 안 흔들리는 거고, 나머지는 매일 흔들립니다.
…뭐, 내일 저녁밥도 아마 뭐 하나 날아가겠죠.